헤이지니 밑에서 일하다 공황장애로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좋은 사장'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명 키즈 유튜버 헤이지니의 회사에서 일하다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약 1년간의 산재 신청 절차 끝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당시 저는 중국어 채널 제작과 운영에 필요한 업무를 혼자 담당하며 장시간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반복했습니다.
건강이 악화돼 산재를 신청하자, 처음에는 도와주겠다고 했던 회사가 이후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의견서에는 제가 치료를 위해 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근거로 질병 자체를 의심하는 취지의 내용도 있었습니다.
2020년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증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같은 해 자살을 시도했고, 지금도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일과 회사 측의 입장은 최근 시사저널 기사에서도 다뤄졌습니다.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근무 환경과 산재 신청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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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헤이지니, 혜진이와 친구 사이였습니다.
혜진이가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에서 캐리언니로 활동하던 시절, 뮤지컬 공연을 응원하러 갈 정도의 사이였습니다.
제가 혜진이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혜진이가 먼저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2016년 12월, 혜진이는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릴 예정이라며 저에게 중국어 채널의 크리에이터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처음부터 일반 직원으로 취업하려던 것이 아니라, 혜진이의 제안으로 중국어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1.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시작한 일
2017년 4월, 회사가 초기 영상 촬영과 편집으로 바쁘던 시기부터 저는 크리에이터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거의 매일 회사에 나갔습니다.
당시 회사에는 촬영과 편집 외에도 우체국 업무 등의 잡무가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의 회사가 바쁘니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우체국 등기를 보내는 등의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다 채널이 오픈한 뒤 쏟아지는 이벤트의 당첨자 선정, 당첨자 정보 엑셀 정리, 당첨자 연락 및 택배 발송 업무까지 자연스럽게 제 몫이 됐습니다.
2017년 7월부터는 중국어 채널에 필요한 성우를 찾는 업무까지 맡았습니다. 혜진이가 중국어를 할 수 없으니 더빙할 성우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무렵 회사에서는 제가 계속 무급으로 일하는 것이 미안하다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기 전까지만 회사 잡무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연봉은 2,000만 원이었습니다.
저는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기 전까지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계약을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제가 맡은 업무는 단순한 잡무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어 채널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헤이지니 한국어 영상의 대사를 받아 적어 대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한국어 대본을 바탕으로 중국어로 말했을 때 영상 길이가 비슷하도록 번역하고, 원어민과 함께 대본을 검수해야 했습니다.
외부 녹음 스튜디오에 방문해 더빙 감독을 맡았고, 더빙된 음성 파일을 한국어 영상에 입히고, 원본 영상에서 현장음을 따로 추출해야 했습니다.
중국어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하고 댓글에 답글을 달아주는 등 채널 관리 업무도 해야 했습니다.
처음 이 모든 업무는 누가 하느냐고 물었을 때, 회사에서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제가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중국어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일을 시작한 회사에서 중국어 채널 제작과 운영에 필요한 업무를 혼자 감당하게 됐습니다.
2. 계속되는 야근과 거절당한 인력 충원 요청
이 모든 업무를 혼자 하다 보니 저는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해야 했습니다.
2018년 초,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는 택시를 타려고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온몸에 힘을 줄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회사에 몸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더 아프다'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다며 직원을 충원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어 채널이 수익화되지 않아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수익화가 된 이후에는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뽑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계속 달라졌지만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까지 야근했고, 한 달에 다섯 번 이상 주말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하루 근무시간은 16시간에 달했습니다.
설 연휴와 추석 연휴에도 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8년 10월, 할로윈 영상을 작업하던 중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더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왜 그러느냐, 그렇게 힘들었느냐며 원래 함께 크리에이터를 하기로 한 것 아니냐고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직서를 제출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새로운 중국인 직원을 채용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충원을 요청했을 때는 안 된다던 일이었습니다.
3. 응급실에 가게 됐고, 공황장애를 진단받았습니다
2018년 11월, 회사에서 야근하던 중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심하게 헐떡이게 됐습니다.
결국 응급실에 갔습니다.
응급실에서는 신체 기능상 문제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유했습니다.
저는 공황장애, 우울증, 사회불안을 진단받았습니다.
그해 12월에도 회사에서 심한 발작이 계속됐고, 회사에서는 쉬고 오라며 무급휴직을 제안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기부터입니다.
당시 제가 알아본 바로 공황장애는 재발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제 상태가 암으로 따지면 말기에 온 것과 같을 정도로 심각하다며, 2018년 초 야근을 마치고 몸을 가눌 수 없었던 때가 증상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저는 회사에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회사와 연결된 노무사가 있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휴직 중에는 여행이 병에 도움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따라 회사에 이야기하고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출근하지 않으니 병이 빠르게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유튜브 중국어 채널을 키웠고, 아이치이 등 중국 영상 플랫폼 세 곳에도 진출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회복한 뒤 회사에 돌아가 원래 약속했던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4. 산재를 도와준다던 친구의 400만 원 제안
그러던 어느 날 혜진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무급휴직 중이라 경제적으로 힘들 것이고, 정신질환이라 산재가 인정될지 안 될지도 모르니 사비로 400만 원을 줄 테니 산재 대신 돈을 받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언제 다시 공황장애가 재발할지 알 수 없었고, 산재가 인정되면 일을 하지 못한 기간에 대한 급여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날의 만남은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근로복지공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회사에서 산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서류를 제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공단을 통해 회사가 제출한 서류를 받아봤습니다.
그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업무와 제 공황장애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제가 쉬는 동안 여행을 다녀온 것을 근거로 실제로 아픈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취지의 내용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연봉 2,000만 원으로 시작해 중간에 2,100만 원으로 인상되기는 했지만, 야근수당도 받지 않은 채 2년 가까운 시간을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제 사생활이 거의 없을 만큼 일만 하다가 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제가 정말 아픈 사람인지조차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여행은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회사에도 이야기했습니다.
단순히 회사와 직원 사이였다면 이렇게까지 충격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혜진이는 원래 제 친구였습니다.
5. "내가 얼마나 아픈지 봤으면서 정말 그렇게 쓴 거야?"
저는 혜진이와 통화했습니다.
그런데 혜진이는 오히려 제 탓을 했습니다.
혜진이는 제가 작성한 진술서에 회사가 업무를 강요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고, 회사 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인정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혜진이와 혜진이의 오빠, 회사 이사인 혜진이의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제가 회사에 찾아와 직원들의 진술서를 받아 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원들에게 언제 방문하는 것이 편한지 물어보고 갔습니다.
그날 임원들이 회사에 없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때 제게 중요한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혜진이가 정말로 제 병을 의심했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혜진이는 제가 회사에서 얼마나 심하게 공황 발작을 겪었는지 직접 봤습니다.
제가 의사의 권유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저는 혜진이에게 의사가 여행을 권유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가 정말 아픈 사람인지 의심된다는 취지의 문구를 넣은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혜진이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대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함께 크리에이터를 하자고 먼저 제안했던 사람.
제가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
제가 회사에서 아파하는 모습을 직접 봤던 사람.
그 사람이 제 병을 의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산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회사의 주장보다도, 제 아픔을 직접 봤던 친구가 저를 의심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통화 이후 제 공황장애는 급격하게 악화됐습니다.
6. 결국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제 공황 발작은 한 번 시작되면 한 시간 이상 이어졌습니다.
숨을 심하게 헐떡였고,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하루 세 번 이상 발작이 반복됐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저는 점점 지쳐 갔습니다.
1년여 만인 2020년 1월, 결국 산업재해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증상은 너무나 심각했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4월, 결국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때는 죽는 것이 이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 편할 것 같았습니다.
자살 시도 이후에도 발작의 양상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본인의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하기 어렵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도록 소견서를 써주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7. 제가 자살 시도까지 했던 시기, 혜진이는 방송에서 '좋은 사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 혜진이의 모든 채널을 구독 취소했습니다.
가능한 한 혜진이와 관련된 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송국 채널에서 혜진이가 출연한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였습니다.
그 방송에서 혜진이는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지 않고, 퇴근 시간이 되면 먼저 집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원하는 직원들과 퇴근 후 함께 게임을 즐기는, 소위 '쿨한 사장'의 모습으로 비쳤습니다.
그 영상을 보며 저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근무할 당시에는 저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직원들도 야근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저는 장시간 근무 끝에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산재를 신청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지 않는 좋은 사장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회사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심지어 영상의 날짜를 확인하니, 제가 자살 시도까지 했던 시기와 혜진이의 방송 출연 시기가 겹쳤습니다.
저는 그 사실에 더욱 분노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던 시기에 혜진이는 방송에서 좋은 사장으로 비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유명인들이 방송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 방송이 단순한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회사에서 실제로 일했고, 실제로 병을 얻었고,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런 제 경험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 방송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겪었던 고통을 알고 있다면, 저에게 최소한의 미안함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저는 그 생각에 몸이 떨릴 만큼 분노했습니다.
8. 실업급여를 도와줬고 재택근무도 허용했다는 주장에 대해
최근 시사저널에서 제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기사에서 혜진이의 실명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회사 측의 반론도 함께 실렸습니다.
회사 측은 제가 중국 송출 콘텐츠 업무를 상호 협의하에 맡았으며,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직무여서 포괄근로계약을 작성했고, 재택근무 등 탄력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제가 실업급여 수령을 위해 권고사직을 요청했으나, 다른 직원들의 청년내일채움공제 혜택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권고사직 처리를 하지 않았고, 자문 노무사의 검토를 거쳐 질병으로 퇴사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경험한 근무 환경과 퇴사 과정은 회사 측 설명과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앞서 설명한 산재 관련 통화를 마지막으로 혜진이와 직접 연락한 적이 없습니다.
이후에는 혜진이의 남편을 통해 회사와 소통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 근처 카페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미 서로의 관계가 불편해졌으니 함께 일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저를 권고사직으로 처리하면 다른 직원들이 받고 있는 정부지원 통장의 지원이 끊기니 질병으로 인한 퇴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에게 권고사직으로 인해 다른 직원들이 불이익을 받는지 문의했습니다.
담당자로부터 그런 불이익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회사와 더 이상 다툴 힘도 없었습니다.
결국 질병으로 인한 퇴직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산재 심사가 진행 중이었던 제 상황에서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습니다.
재택근무에 대한 설명 역시 제가 경험한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단 하루도 재택근무를 한 적이 없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 앞 약 5평 남짓한 원룸에 살고 있었고, 그곳에는 컴퓨터도 노트북도 없었습니다.
2018년 5월, 주말 출근을 위해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던 중 낙상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낙상사고로 입원하러 가면서도 회사 컴퓨터에 원격으로 접속해 업무를 하기 위해 노트북 대여업체에서 노트북을 빌려야 했습니다.
회사 측은 제가 재택근무 등 탄력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설명했지만, 적어도 제가 실제로 근무했던 기간에는 단 하루도 재택근무를 한 적이 없습니다.
9.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저는 처음부터 일반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혜진이의 회사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혜진이가 먼저 중국어 크리에이터로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저는 친구를 믿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어 채널의 제작과 운영에 필요한 업무를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근무 속에서 건강이 악화됐고, 결국 공황장애를 진단받았습니다.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했을 때 회사는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단을 통해 확인한 회사의 의견서에는 제 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하는 취지의 내용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이후 공황장애는 더욱 심해졌고, 저는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기에 혜진이는 방송에서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지 않는 좋은 사장으로 비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제가 겪었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인데, 방송에서는 제가 겪었던 현실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근무 환경과 산업재해 신청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방송에서 소개된 회사의 모습과 제가 실제로 경험했던 근무 환경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차이에 대해 제 경험과 제가 확인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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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내용은 시사저널에서도 취재·보도한 바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는 산업재해 승인 관련 내용과 회사 측 반론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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